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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8일 토요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10차 페미시국광장 <강간죄 개정을 위한 총궐기: 이제는 강간죄다. 폭행협박 증명요구 폐기하라!>가 진행되었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은 2009년 고장자연배우사건, 2013년 전법무부 차관 김학의에 의한 성폭력사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고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재수사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고장자연배우사건에 대해 수사과정에 문제는 있으나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전법무부 차관 김학의 성폭력사건에 대해서는 ‘성폭력’만 제외하고 다른 혐의들을 구속 기소하며 도리어 성폭력피해자을 무고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은 사법부에 여성폭력사건들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5월 24일 대검찰청 점거시위를 시작으로 7월 12일부터 9월 20일 매주 금요일 저녁 거리에서 페미시국광장을 진행했습니다. 10차 페미시국광장은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는 지난한 싸움을 앞으로도 끈질기게 해나갈 것임을, 또한 현재의 사건들이 은폐되어 규명해야할 과거사로 또 다시 남겨지지 않기 위해 현행 강간죄의 기본요건 폭행협박 증명요구 폐기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와 무죄판결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법정의를 세우기 위해 성폭력에 대한 폭행협박 증명요구 폐기를 위한 총궐기 투쟁을 선포하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정하경주(달개비) 님의 사회로 강간죄에서 규정하고 있는 “폭행과 협박”이 아니라, “동의여부”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대형현수막을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펼쳐들고, 목소리 높여 강간죄 개정을 외치는 퍼포먼스로 이어졌습니다.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의 279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현행 법률에서의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기본적인 증명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을 기본적인 증명요건으로 하는 강간죄는 직접적인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는 것을 피해자에게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많은 성폭력사건들의 가해자들은 직장상사/ 교수/ 선생님/ 선배라는 위력, 피해자의 나이/ 장애여부/ 술이나 약물에 취하게 하는 등 피해자의 취약한 상황, 피해자의 신뢰 등을 악용해 성폭력 가해를 합니다. 여성들은 요구합니다. 현형 강간죄의 폭행협박 증명요구 폐기하라!
데이트 관계라도, 술에 취해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다면, 저항의 증거가 없어도, 이전에 성관계가 있었더라도, 가해자의 집에서 술을 마셨어도, 가해자에게 평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더라도, 가해자가 직장 상사, 선생님, 목사 등 위계적 관계 속에 있었다면, 피해이후 피해자가 일상생활을 잘 해나갔더라도, 저항하거나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해도, 도망가지 못했어도, 피해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감췄더라도.
“동의 없이”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라!!
형법 297조 강간죄를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하라.
퍼포먼스에 이어 진행된 첫 번째 발언은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도경은 님이 해주셨습니다. 형법 297조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 본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전혀 다른 현실을 전해주셨습니다.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왜곡하고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게 만드는 법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도경은 님 발언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 도경은입니다. 저는 오늘, 총 208개 여성단체가 함께 하는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라는 법의 ’엄격한‘ 기준, 아니 대단한 착각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피해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만 성폭력 피해가 인정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본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상담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해고될까봐”, “거절하기 어려워서”, “분명히 거부했지만 가해자가 듣지 않아서” 저항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전국 66개 상담소에 접수된 강간 상담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2019년 1월부터 3개월간 1,030명의 성폭력 피해사례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1.4%에 달했습니다. 10건 중 무려 7건의 성폭력 피해가 폭행 또는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권력’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위력, 영향력, 경제력 등을 가지고 있을 때,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무력 상태나 고립된 상황 등을 잘 알고 이용할 때, 물리적인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성폭력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용기 내어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들은 호소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인데, 제가 겪은 것이 성폭력이 아닌가요?”
“제가 피해자인데 왜 제가 폭행과 협박을 당한 것까지 증명해야 하나요?”
“피해를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오히려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요.”
법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피해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 되어 왔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미 ’동의‘ 여부가 기준입니다. 유엔은 각국이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습니다. 특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2018년 한국 정부에 대해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여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독일, 캐나다, 영국, 스웨덴, 미국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또는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하여 폭행 및 협박 없는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합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다고 해도 위계나 위력, 피해자의 연령, 장애유무, 무의식, 공포 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동의가 불가능한 경우까지 ’동의 없음‘으로 판단하여 처벌하는 입법을 채택하였습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가 방금 이야기한 국제법과 해외 입법례는 모두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폭행 및 협박이 없다고 하더라도 동의 없는 성적 침해는 범죄이며, 국가는 이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국회에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개정하거나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법안이 10개나 발의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바뀌지 않는 한, 피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왜 도망치지 못했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잘못은 가해자가 했는데도 도리어 피해자가 보복성 역고소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왜곡하고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게 만드는 법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국회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합니다.
국가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해야 합니다.
법이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너무도 당연한 정의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 도경은입니다. 저는 오늘, 총 208개 여성단체가 함께 하는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라는 법의 ’엄격한‘ 기준, 아니 대단한 착각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피해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만 성폭력 피해가 인정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본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상담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해고될까봐”, “거절하기 어려워서”, “분명히 거부했지만 가해자가 듣지 않아서” 저항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전국 66개 상담소에 접수된 강간 상담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2019년 1월부터 3개월간 1,030명의 성폭력 피해사례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1.4%에 달했습니다. 10건 중 무려 7건의 성폭력 피해가 폭행 또는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권력’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위력, 영향력, 경제력 등을 가지고 있을 때,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무력 상태나 고립된 상황 등을 잘 알고 이용할 때, 물리적인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성폭력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용기 내어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들은 호소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인데, 제가 겪은 것이 성폭력이 아닌가요?”
“제가 피해자인데 왜 제가 폭행과 협박을 당한 것까지 증명해야 하나요?”
“피해를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오히려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요.”
법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피해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 되어 왔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미 ’동의‘ 여부가 기준입니다. 유엔은 각국이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습니다. 특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2018년 한국 정부에 대해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여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독일, 캐나다, 영국, 스웨덴, 미국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또는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하여 폭행 및 협박 없는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합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다고 해도 위계나 위력, 피해자의 연령, 장애유무, 무의식, 공포 등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동의가 불가능한 경우까지 ’동의 없음‘으로 판단하여 처벌하는 입법을 채택하였습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가 방금 이야기한 국제법과 해외 입법례는 모두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폭행 및 협박이 없다고 하더라도 동의 없는 성적 침해는 범죄이며, 국가는 이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국회에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개정하거나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법안이 10개나 발의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바뀌지 않는 한, 피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왜 도망치지 못했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잘못은 가해자가 했는데도 도리어 피해자가 보복성 역고소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왜곡하고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게 만드는 법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국회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합니다.
국가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해야 합니다.
법이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너무도 당연한 정의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 발언은 KBS 직장내 성폭력 피해생존자 부현정 님이 이어갔습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던 순간, 적극적인 저항이나 거부의사를 표현하고 구조요청을 하기 어려웠던 현실에 대해 말했습니다.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지 않아도 충분히 위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가해자와의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피해자의 “동의와 비동의” 로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부현정 님 발언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안녕하세요. 저는 kbs미투생존자 부현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2014년 kbs 파견직으로 입사한 지 한 달만에 정직원이자 유부남인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피해자는 저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파견직 여직원도 있었습니다.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직장상사를 고소했고, 다른 피해자의 1심 재판에서는 가해자가 유죄가 나왔지만 2심에서는 폭행이나 협박 등의 위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만진 것은 사실이나 추행이 아니다, 피해자가 어느 정도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상한 판결로 남자는 무죄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의 사건은 2018년 2월이 되고서야 민사에서 성희롱만을 인정받았습니다
제 사건은 더욱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길거리 CCTV 상에서 가해자가 제 손을 억지로 붙잡을 때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좋아서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누가 직장상사에게 팔목을 잡혀서 끌려가는데 좋아서 잡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그리고 또, 직장상사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을 뿌리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저는 가해자가 저에게 기습입맞춤을 하고 나서야 도망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반항하거나 화를 내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 “집에 먼저 가보겠습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고,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거기서 가해자와 큰 소리로 싸우거나 했으면,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 상황에서 가해자와 싸웠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은 이처럼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 직장상사에게 학교 내에서 선생님, 교수님에게 또는 집안에서는 친족에게 일어나는 성폭력에서 대체로 가해자는 “악수나 하려고 그런건데, 왜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 “어깨가 뭉친 것 같아 풀어주려고 하는데, 왜 이리 까탈스럽냐?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의 말을 하며,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적극적인 구조요청, 이 또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당장 경찰을 부르면 앞으로의 일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문에 신고까지 오래 걸리는 피해자도 많습니다. 본인이 당한 일을 경찰서에 진술하며 공개적으로 알려야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알려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주변사람들이 피해자를 더럽다고 또는 너의 잘못도 있다는 식의 비난이 정말 하나도 없다면 누구나 경찰을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비난받는 경우가 많고, 안희정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불륜미투” 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피해자 또한 분명히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걱정이 컸을 것이고, 당장 관뒀을 때 돌아오는 경제적 어려움 등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늦은 신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찰, 검찰은 성폭력 사건에 성추행 피해자에게 항상 완벽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합니다. 폭행이나 협박도 없었다면, 빠져나갈 시간이 충분히 있지 않았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지 않았냐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는데,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보통 성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힘이나 지위가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힘이 물리적으로 열등히 약하며, 우리가 보는 미디어에서의 성폭력도 대게 여자들이 반항하면 폭력이 수반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것에 학습되어진 우리 여자들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가해자의 말에 따라 가해자에게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항하고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될까요? 불보듯 뻔하게 폭행이 수반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폭행이 살인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 가지 유명한 사건으로, 조두순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8살 짜리 피해아동이 구해달라는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머리를 변기물에 쳐박고 목을 졸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아동은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뉴스를 보며 사는데, 그런 일이 나에게 닥쳐왔을 때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저항하여 이길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저항도 해보고 반항도 해보겠죠. 그런데 그런 보장도 없이 무작정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어야만 성폭력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감만 줄 뿐입니다.
어느 누가 나의 목숨을 걸고, 가해자와 싸울 수 있을까요? 죽음보다 나의 정조가 중요해서 죽음을 택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피해자들이 생존하여야 제대로 된 사건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죽어버리면 가해자는 마치 피해자와 내연의 관계 또는 애인과 싸웠을 뿐인데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또다시 죽은 피해자를 욕되게 할 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피해자가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해자를 거슬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보자는 마음이 대부분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수반되어야 하는 성폭력 법” 은 피해자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가해자에게 억지로 손을 잡히고 포옹을 당할 때, 가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직장 후배를 만났다고. 그런 상황에서 제가 뺨을 후려갈겼어야 할까요? 아니면 가해자가 저에게 협박을 해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직장 내 위치가 저보다 위라는 것 자체로도 저는 충분히 위력감을 느꼈고, KBS의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반항하는 것은 직장을 관두고 KBS 자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는 직장을 관둘 작정을 하고, 이곳에서 가해자와 싸워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일단은 참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였습니다.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이 대게 이런 상황이 오면 직장까지 관둘 작정을 해야 싸울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
직장상사가 손잡는 것을 참았다고 해서, 손잡는 것에 동의 한 것도 아니고, 기습으로 나에게 입을 맞추는 것 또한 동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누군가는 로맨틱한 연애를 했다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몸의 주체는 나이고, 저는 그 어떠한 행위에도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장상사에게 거세게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는 마치 처음 만난 유부남에게 돈을 뜯어내려던 무고녀가 되어 2017년 있었던 1심 재판에서 징역8개월 집행유예 2년의 범법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지난 7월 현명한 대법관님들의 판단으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제 싸움은 5년째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지 않아도 충분히 위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가해자와의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피해자의 “동의와 비동의” 로 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폭행과 협박”을 당해야만 성폭력이 인정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해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격을 살인하는 범죄입니다. 피해자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고, 미래의 삶까지 파괴당합니다. 그러한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기는커녕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가 나오거나 형량이 적게 나오는 일이 더이상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bs미투생존자 부현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2014년 kbs 파견직으로 입사한 지 한 달만에 정직원이자 유부남인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피해자는 저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파견직 여직원도 있었습니다.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직장상사를 고소했고, 다른 피해자의 1심 재판에서는 가해자가 유죄가 나왔지만 2심에서는 폭행이나 협박 등의 위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만진 것은 사실이나 추행이 아니다, 피해자가 어느 정도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상한 판결로 남자는 무죄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의 사건은 2018년 2월이 되고서야 민사에서 성희롱만을 인정받았습니다
제 사건은 더욱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길거리 CCTV 상에서 가해자가 제 손을 억지로 붙잡을 때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좋아서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누가 직장상사에게 팔목을 잡혀서 끌려가는데 좋아서 잡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그리고 또, 직장상사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을 뿌리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저는 가해자가 저에게 기습입맞춤을 하고 나서야 도망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반항하거나 화를 내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 “집에 먼저 가보겠습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고,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거기서 가해자와 큰 소리로 싸우거나 했으면,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 상황에서 가해자와 싸웠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은 이처럼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 직장상사에게 학교 내에서 선생님, 교수님에게 또는 집안에서는 친족에게 일어나는 성폭력에서 대체로 가해자는 “악수나 하려고 그런건데, 왜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 “어깨가 뭉친 것 같아 풀어주려고 하는데, 왜 이리 까탈스럽냐?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의 말을 하며,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적극적인 구조요청, 이 또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당장 경찰을 부르면 앞으로의 일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문에 신고까지 오래 걸리는 피해자도 많습니다. 본인이 당한 일을 경찰서에 진술하며 공개적으로 알려야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알려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주변사람들이 피해자를 더럽다고 또는 너의 잘못도 있다는 식의 비난이 정말 하나도 없다면 누구나 경찰을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비난받는 경우가 많고, 안희정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불륜미투” 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피해자 또한 분명히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걱정이 컸을 것이고, 당장 관뒀을 때 돌아오는 경제적 어려움 등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늦은 신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찰, 검찰은 성폭력 사건에 성추행 피해자에게 항상 완벽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합니다. 폭행이나 협박도 없었다면, 빠져나갈 시간이 충분히 있지 않았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지 않았냐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는데,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보통 성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힘이나 지위가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힘이 물리적으로 열등히 약하며, 우리가 보는 미디어에서의 성폭력도 대게 여자들이 반항하면 폭력이 수반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것에 학습되어진 우리 여자들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가해자의 말에 따라 가해자에게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항하고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될까요? 불보듯 뻔하게 폭행이 수반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폭행이 살인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 가지 유명한 사건으로, 조두순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8살 짜리 피해아동이 구해달라는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머리를 변기물에 쳐박고 목을 졸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아동은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뉴스를 보며 사는데, 그런 일이 나에게 닥쳐왔을 때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저항하여 이길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저항도 해보고 반항도 해보겠죠. 그런데 그런 보장도 없이 무작정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어야만 성폭력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감만 줄 뿐입니다.
어느 누가 나의 목숨을 걸고, 가해자와 싸울 수 있을까요? 죽음보다 나의 정조가 중요해서 죽음을 택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피해자들이 생존하여야 제대로 된 사건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죽어버리면 가해자는 마치 피해자와 내연의 관계 또는 애인과 싸웠을 뿐인데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또다시 죽은 피해자를 욕되게 할 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피해자가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해자를 거슬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보자는 마음이 대부분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수반되어야 하는 성폭력 법” 은 피해자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가해자에게 억지로 손을 잡히고 포옹을 당할 때, 가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직장 후배를 만났다고. 그런 상황에서 제가 뺨을 후려갈겼어야 할까요? 아니면 가해자가 저에게 협박을 해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직장 내 위치가 저보다 위라는 것 자체로도 저는 충분히 위력감을 느꼈고, KBS의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반항하는 것은 직장을 관두고 KBS 자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는 직장을 관둘 작정을 하고, 이곳에서 가해자와 싸워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일단은 참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였습니다.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이 대게 이런 상황이 오면 직장까지 관둘 작정을 해야 싸울 수 있는 입장일 것입니다.
직장상사가 손잡는 것을 참았다고 해서, 손잡는 것에 동의 한 것도 아니고, 기습으로 나에게 입을 맞추는 것 또한 동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누군가는 로맨틱한 연애를 했다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몸의 주체는 나이고, 저는 그 어떠한 행위에도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장상사에게 거세게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는 마치 처음 만난 유부남에게 돈을 뜯어내려던 무고녀가 되어 2017년 있었던 1심 재판에서 징역8개월 집행유예 2년의 범법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지난 7월 현명한 대법관님들의 판단으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제 싸움은 5년째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지 않아도 충분히 위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가해자와의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피해자의 “동의와 비동의” 로 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폭행과 협박”을 당해야만 성폭력이 인정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해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격을 살인하는 범죄입니다. 피해자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고, 미래의 삶까지 파괴당합니다. 그러한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기는커녕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가 나오거나 형량이 적게 나오는 일이 더이상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세 번째 발언은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해오신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남성아 님이 해주셨습니다. 작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에 분노한 여성들이 서울역사박물관에 모여 뜨거운 횃불을 들었었습니다. 1년 8개월동안 법정에서, 거리에서, 온라인 등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함께 연대하고 싸워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10차 페미시국광장의 슬로건 "이제는 강간죄다. 폭행협박 증명요구 폐기하라"의 의미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하라는 요구에는 강간죄뿐 아니라 폭행이나 협박을 따지지 않도록 규정된 업무상 위력의 간음에서도 ‘위력의 행사’라는 또 다른 구성요건을 요구하며 처벌의 공백을 더욱 넓히고 있는 사법현실에 대한 변화의 요구도 담겨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남성아 님 발언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꼭 1년전 8월 18일, 이 거리에서 우리는 ‘여성에게 더 이상 국가란 없다’,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가 유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김지은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1년을 지나고 다시 이 자리에 서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뒤늦게나마 지난 1년 8개월간 법정에서, 길거리에서,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2019년 9월 9일, 대법원은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에 대해 징역 3년 6월의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 대한 법리와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죄만으로는 처벌 공백이 매우 커, “권력을 가진 자가 위력이나 위계를 이용하여 간음을 할 경우”가 신설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비장애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가해자에게 유죄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가 잘못된 판결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수행비서로서 업무상 수직적-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으며 피고인에게 위력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자의 영향력은 부러 드러낼 필요 없이 작동됩니다. 재판부에서 요구하는 “위력의 행사”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거나,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협박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폭행 혹은 협박이 있었는지 따지지 않고, 권력과 지위와 위계를 이용하여 간음을 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 취지를 재판부 스스로 무력화 시켰습니다. 위력이 작동하는 현실과 법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권력형 성폭력이 실제로는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무죄선고로 보여주었습니디.
반면 2심 재판부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어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음을 인식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행위로 나아간 것이라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고,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피고인이 가진 지위와 영향력이 업무와 비업무를 구분하지 않고 작동되는 현실을 살펴 판단한 것입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하라는 요구에는 강간죄뿐 아니라 폭행이나 협박을 따지지 않도록 규정된 업무상 위력의 간음에서도 ‘위력의 행사’라는 또 다른 구성요건을 요구하며 처벌의 공백을 더욱 넓히고 있는 사법현실에 대한 변화의 요구도 담겨 있습니다.
많은 성폭력 범죄가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을 이용하여 발생하지만, 폭행과 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이나 위력의 행사라는 법리를 벗어난 판단기준에 갇혀 처벌이 안 되고 있습니다. 직접적 폭행. 협박이 없이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사례가 71.4%나 되고, 피해자가 성폭력을 신고하고 재판에거 유죄판결이 내려지는 확률은 더 낮은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와 현실을 반영한 법이 존재하길 원합니다.
이제는 가해자에게 범죄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으로 존재하길 원합니다.
이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꼭 1년전 8월 18일, 이 거리에서 우리는 ‘여성에게 더 이상 국가란 없다’,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가 유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김지은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1년을 지나고 다시 이 자리에 서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뒤늦게나마 지난 1년 8개월간 법정에서, 길거리에서,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2019년 9월 9일, 대법원은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에 대해 징역 3년 6월의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 대한 법리와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죄만으로는 처벌 공백이 매우 커, “권력을 가진 자가 위력이나 위계를 이용하여 간음을 할 경우”가 신설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비장애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가해자에게 유죄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가 잘못된 판결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수행비서로서 업무상 수직적-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으며 피고인에게 위력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자의 영향력은 부러 드러낼 필요 없이 작동됩니다. 재판부에서 요구하는 “위력의 행사”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거나,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협박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폭행 혹은 협박이 있었는지 따지지 않고, 권력과 지위와 위계를 이용하여 간음을 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 취지를 재판부 스스로 무력화 시켰습니다. 위력이 작동하는 현실과 법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권력형 성폭력이 실제로는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무죄선고로 보여주었습니디.
반면 2심 재판부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어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음을 인식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행위로 나아간 것이라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고,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피고인이 가진 지위와 영향력이 업무와 비업무를 구분하지 않고 작동되는 현실을 살펴 판단한 것입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하라는 요구에는 강간죄뿐 아니라 폭행이나 협박을 따지지 않도록 규정된 업무상 위력의 간음에서도 ‘위력의 행사’라는 또 다른 구성요건을 요구하며 처벌의 공백을 더욱 넓히고 있는 사법현실에 대한 변화의 요구도 담겨 있습니다.
많은 성폭력 범죄가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을 이용하여 발생하지만, 폭행과 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이나 위력의 행사라는 법리를 벗어난 판단기준에 갇혀 처벌이 안 되고 있습니다. 직접적 폭행. 협박이 없이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사례가 71.4%나 되고, 피해자가 성폭력을 신고하고 재판에거 유죄판결이 내려지는 확률은 더 낮은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와 현실을 반영한 법이 존재하길 원합니다.
이제는 가해자에게 범죄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으로 존재하길 원합니다.
이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세 분의 발언 다음으로는 래퍼 최삼 님의 연대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성폭력 피해여성을 꽃뱀에 비유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 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곡 <꽃뱀>과 여성 혹은 약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정면으로 응수하는 곡 <할만큼했다> 두 곡을 불러주셨습니다. 여성혐오 문화에 저항하면서 하고싶었던 말들을 최삼 님의 마이크를 통해 들으며 같이 소리지를 수 있었습니다.
최삼님의 공연에 이어, 성차별, 성폭력을 용인하는 일상의 강간문화와 싸우고 있는 페미니스트 로리 님이 발언해주셨습니다. 성폭력피해 상담 사례 분석 내용을 전해주시면서, 성폭력 사건에서의 폭행협박 외에 피해자를 제압하는 다양한 방식(회유와 강요, 폭언, 속이기 등)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던졌주셨습니다. " 명확하고 적극적인 동의를 얻으면 되지 않습니까?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을 언제까지 국가가 비호할 것입니까? 강간범에게 유리한 최대한의 범위를 인정해주는 법이 명문으로 존재하는 이 상황이 어째서 강간문화가 아닙니까?"
<로리 님 발언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조사 결과 중 성폭력 상담 사례 중 <피해자가 강간임을 호소한 이유>를 읽어봤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 사례에서도 너무나 흔히 접하는 이야기라서 충격적이었는데요. 읽어보겠습니다.
- 가해자가 억지로 또는 힘으로 함
- 가해자가 폭언 함
-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회유와 강요를 함
- 가해자가 급작스럽게 함
- 가해자가 피해자를 속임
- 피해자가 울면서 거부함
피해자가 거절의사를 표시함 무려 16건이었구요.
- 지속된 폭력피해 경험으로 저항 못함. (피해자는 알고 있는 거죠, 거부하고 저항하더라도 그 결과가 폭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요.)
- 가해자의 지위나 주변인과의 관계로 저항 못함
- 무서웠거나 얼음이 되어 저항 못함
- 원치 않았으나 마음이 약해짐
- 성관계를 회피하려고 핑계를 대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이것은 미디어 오늘에서 기사를 낸 전국 성폭력상담소 66개소의 강간피해 상담사례 분석입니다.
“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항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다.”
“평소에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물건을 부쉈다. 그래서 나도 맞을까봐 너무 무서웠다.”
“이상한 짓 안 할게. 치킨만 먹고 TV만 보다 가자. 쉬러 가자고만 했다.”
모두 피해자가 경험으로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명시적인 거부뿐 아니라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피하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울면서 거부하고 무서웠고 힘 겨루기에서 졌고. 이중 현재 강간죄의 최협의설, 가장 좁은 범위로만 강간죄를 인정하는 현행 법안의 조건에서는 가해자가 심각한 수준, 과연 어느 정도가 심각한 것인지는 남성 권력이 잡고 있는 법원이 판단하겠죠? 심각한 수준의 폭행,협박이 존재하고, 강한 저항, 역시 어느 정도로 강한 건지는 법원이, 판사 개인이 판단하겠죠? 공공장소에서 불특정다수의 여성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남성 판사들이요? 이들이 피해자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판단하고, 도망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봅니다. 이렇게 엄격한 의미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에는 확인 불가, 판단 불가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제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강간치상 판결 사례를 좀 찾아봤는데요. 가해자가 피해자의 얼굴을 떄린 점을 입증하지 못했거나, 경미한 상처가 인정되더라도 그 상처는 강간치상의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단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데 어떻게 입증하죠?
대학교 때 법 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성폭행 당시에 바지를 벗겼다, 바지를 벗기려면 허리를 드는 등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가해자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등의 판례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2008년에 "아래로 갈 수록 폭이 좁아지는 벗기기 힘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벗거나 벗기는 행위에 동조해야 하의를 벗을 수 있었다는 판단으로 무죄 선고를 내린 판례가 있었네요. 법관의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 정도의 증거가 필요하다구요. 과연 누가 판단하는 합리입니까?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해를 각오하고서까지 저항할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을 돕거나 방조할 것인지, 협박에 의해 스스로 옷을 벗을 것인지,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은 이것뿐이네요. 살기 위해서 저항을 포기했을 경우에는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를 한 것>이고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이렇게 머리띠를 쪼매고 귀중한 주말 시간을 할애해서 소리높여야 한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이게 현실이기 때문에 주장해야겠습니다. 성범죄의 20% 가량이 피해자가 잠들어있거나 술.마약에 취해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잠든 여성,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성관계 전에도, 도중에도, 일방이 멈추라고, 하지말라고 하면 그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옷 벗었는데 삽입 못하면 죽습니까? 한번 삽입했다가 사정 못하면 죽나요?
좋아서 했다가 뒤통수 맞을까봐 무섭다는 남성들의 공포에도 일리가 있다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명확하고 적극적인 동의를 얻으면 되지 않습니까?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을 언제까지 국가가 비호할 것입니까? 강간범에게 유리한 최대한의 범위를 인정해주는 법이 명문으로 존재하는 이 상황이 어째서 강간문화가 아닙니까?
남성들의 공포의 근원이라는 일명 꽃뱀, 무고죄, 통계가 말하고 있던데요. 성폭력 무고 고소 중에서 83%가 불기소처분이 나왔고, 대한민국 전체 고소를 대상으로 한 무고 고소 비율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해자를 입막음하기 위해서, 무고죄 고소를 또 다른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없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존재하지 않는 꽃뱀, 무고죄, 뒤통수맞기, 이런 것을, 여성들의 현실적인 공포인 강간, 협박, 폭행, 낙인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같은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까?
협박과 폭행을 받았는지 여부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현행법에도 분명히 문제 있습니다. 남자들 선진국 좋아하잖아요. 영국, 스웨덴, 독일, 캐나다, 미국 등 선진국 따라가자구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로 처벌하는 선진국 규정을, 그들이 이렇게 결정한 이유를 보자 이겁니다. 특히 스웨덴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까지 처벌합니다. 모두 같은 합의를 하고 있죠. 폭행, 협박은 강간죄의 기본 구성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의 없는 성적 침해는 모두, 무조건, 범죄이며,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국가는 동의 없는,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성적 침해를 처벌해야 합니다.
올해는 참 좋은 일이 많았는데요. 낙태죄 폐지, 안희정 성폭력 사건 유죄, 연극인 이윤택 실형 선고, 이 기쁜 일들은 올해에 우주의 대운이 모여서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몇년 동안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여성단체가 투쟁하고 주장하고 근거를 대고 그놈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목표인 강간죄의 구성요건 폐지, 동의 여부가 강간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도 꼭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조사 결과 중 성폭력 상담 사례 중 <피해자가 강간임을 호소한 이유>를 읽어봤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 사례에서도 너무나 흔히 접하는 이야기라서 충격적이었는데요. 읽어보겠습니다.
- 가해자가 억지로 또는 힘으로 함
- 가해자가 폭언 함
-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회유와 강요를 함
- 가해자가 급작스럽게 함
- 가해자가 피해자를 속임
- 피해자가 울면서 거부함
피해자가 거절의사를 표시함 무려 16건이었구요.
- 지속된 폭력피해 경험으로 저항 못함. (피해자는 알고 있는 거죠, 거부하고 저항하더라도 그 결과가 폭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요.)
- 가해자의 지위나 주변인과의 관계로 저항 못함
- 무서웠거나 얼음이 되어 저항 못함
- 원치 않았으나 마음이 약해짐
- 성관계를 회피하려고 핑계를 대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이것은 미디어 오늘에서 기사를 낸 전국 성폭력상담소 66개소의 강간피해 상담사례 분석입니다.
“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항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다.”
“평소에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물건을 부쉈다. 그래서 나도 맞을까봐 너무 무서웠다.”
“이상한 짓 안 할게. 치킨만 먹고 TV만 보다 가자. 쉬러 가자고만 했다.”
모두 피해자가 경험으로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명시적인 거부뿐 아니라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피하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울면서 거부하고 무서웠고 힘 겨루기에서 졌고. 이중 현재 강간죄의 최협의설, 가장 좁은 범위로만 강간죄를 인정하는 현행 법안의 조건에서는 가해자가 심각한 수준, 과연 어느 정도가 심각한 것인지는 남성 권력이 잡고 있는 법원이 판단하겠죠? 심각한 수준의 폭행,협박이 존재하고, 강한 저항, 역시 어느 정도로 강한 건지는 법원이, 판사 개인이 판단하겠죠? 공공장소에서 불특정다수의 여성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남성 판사들이요? 이들이 피해자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판단하고, 도망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봅니다. 이렇게 엄격한 의미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에는 확인 불가, 판단 불가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제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강간치상 판결 사례를 좀 찾아봤는데요. 가해자가 피해자의 얼굴을 떄린 점을 입증하지 못했거나, 경미한 상처가 인정되더라도 그 상처는 강간치상의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단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데 어떻게 입증하죠?
대학교 때 법 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성폭행 당시에 바지를 벗겼다, 바지를 벗기려면 허리를 드는 등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가해자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등의 판례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2008년에 "아래로 갈 수록 폭이 좁아지는 벗기기 힘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벗거나 벗기는 행위에 동조해야 하의를 벗을 수 있었다는 판단으로 무죄 선고를 내린 판례가 있었네요. 법관의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 정도의 증거가 필요하다구요. 과연 누가 판단하는 합리입니까?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해를 각오하고서까지 저항할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을 돕거나 방조할 것인지, 협박에 의해 스스로 옷을 벗을 것인지,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은 이것뿐이네요. 살기 위해서 저항을 포기했을 경우에는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를 한 것>이고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이렇게 머리띠를 쪼매고 귀중한 주말 시간을 할애해서 소리높여야 한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이게 현실이기 때문에 주장해야겠습니다. 성범죄의 20% 가량이 피해자가 잠들어있거나 술.마약에 취해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잠든 여성,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성관계 전에도, 도중에도, 일방이 멈추라고, 하지말라고 하면 그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옷 벗었는데 삽입 못하면 죽습니까? 한번 삽입했다가 사정 못하면 죽나요?
좋아서 했다가 뒤통수 맞을까봐 무섭다는 남성들의 공포에도 일리가 있다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명확하고 적극적인 동의를 얻으면 되지 않습니까?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을 언제까지 국가가 비호할 것입니까? 강간범에게 유리한 최대한의 범위를 인정해주는 법이 명문으로 존재하는 이 상황이 어째서 강간문화가 아닙니까?
남성들의 공포의 근원이라는 일명 꽃뱀, 무고죄, 통계가 말하고 있던데요. 성폭력 무고 고소 중에서 83%가 불기소처분이 나왔고, 대한민국 전체 고소를 대상으로 한 무고 고소 비율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해자를 입막음하기 위해서, 무고죄 고소를 또 다른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없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존재하지 않는 꽃뱀, 무고죄, 뒤통수맞기, 이런 것을, 여성들의 현실적인 공포인 강간, 협박, 폭행, 낙인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같은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까?
협박과 폭행을 받았는지 여부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현행법에도 분명히 문제 있습니다. 남자들 선진국 좋아하잖아요. 영국, 스웨덴, 독일, 캐나다, 미국 등 선진국 따라가자구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로 처벌하는 선진국 규정을, 그들이 이렇게 결정한 이유를 보자 이겁니다. 특히 스웨덴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까지 처벌합니다. 모두 같은 합의를 하고 있죠. 폭행, 협박은 강간죄의 기본 구성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의 없는 성적 침해는 모두, 무조건, 범죄이며,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국가는 동의 없는,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성적 침해를 처벌해야 합니다.
올해는 참 좋은 일이 많았는데요. 낙태죄 폐지, 안희정 성폭력 사건 유죄, 연극인 이윤택 실형 선고, 이 기쁜 일들은 올해에 우주의 대운이 모여서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몇년 동안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여성단체가 투쟁하고 주장하고 근거를 대고 그놈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목표인 강간죄의 구성요건 폐지, 동의 여부가 강간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도 꼭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성폭력피해생존자 민지 님이 용기 있는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7세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 22세 때 등 생애 전반에 끊이지 않았던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 어떤 가해자도 증명가능한 폭행과 협박을 동반하지 않았던 경험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회유와 기습, 술 등을 악용한 성폭력과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2차 피해까지. 담담하지만 다부진 목소리로 "내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행위를 난 동의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까지 힘있게 읽어내려간 민지 님에게 참가자들은 연대의 박수로 응원해주었습니다.
<민지 님 발언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안녕하세요. 저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 민지라고 합니다.
저는 7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촌 동생과 놀러간 PC방에서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지하철에서 낯선 걸인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22살에 아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강제 추행죄 및 강간죄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하는 경우’. 그런데 말입니다. 사촌 오빠는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PC방 사장도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걸인도, 강간범 또한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사촌 오빠는 어린 저에게 제 성기를 만지면 ‘놀아주겠다’며 회유했고, 제가 거절하자 억지로 제 속옷에 손을 넣어 제 성기를 만졌고, PC방 사장은 갑자기 저에게 와서 친절하게 굴며 제 어깨를 주무르다 기습적으로 손을 내려 가슴을 주물렀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남동생과 서있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낯선 사람이 와서 저와 부딪히더니, 제 가슴을 만지고 후다닥 내렸습니다. 나가기 싫었지만 계속 ‘나오라’는 종용에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된 술자리에서는, 끝까지 술을 거부하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해 입을 댔던 술에 필름이 끊겨, 일어나보니 알몸 상태로 모텔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얼어붙어 공황상태에 빠진 저를 가해자는 좋아한다며 강제로 껴안고 뽀뽀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저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협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에게는 그러한 행위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다는 그 ‘권력’ 말입니다. 그 권력 자체가 폭행이고, 협박입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에게 행사하는 그 행위 자체가 말입니다.
지금껏 저는 증명해야 했습니다. 제가 당한 피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내 몸과 정신은 물론, 내 자아를 무너뜨리고, 내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무너뜨렸다는 것을 증명해내야만 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일상에서도, 사법 처리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로 인해 상처 입어 망가진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피해자화’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당한 피해가 ‘피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왜 그랬니?”
“이제와서 이야기해서 어떡하라고.”
“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니.”
“다시는 그러지 마라.”
“왜 저항하지 못했니.”
심지어 “똥 닦아줘야 될 사람 참 많네.”라는 말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제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자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들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습니다. 그 행위를 한 건 가해자인데 피해자에게 가해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꾸짖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폭행 및 협박 아닙니까?
저 또한 저에게 한 명의 ‘가해자’였습니다. 제 잘못이라고, 가해자에게 아무런 말도 저항도 하지 못했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늦게까지 술을 먹은 제 잘못이라고,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간 당한 후 1년을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 저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거의 반년 동안 하루에 밥 한 공기밖에 먹지 못하다 식음을 전폐하고 휴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걷지를 못했으니까요. 힘이 없어 걸을 수조차 없어 학교를 못 갔습니다. 방에서 누워 지냈습니다. 체력이라도 기르려고 시도했던 산책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폭식을 해서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 가량 늘어났고, 폭식은 곧 폭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술을 먹고 자고, 저녁에 눈을 뜨면 술을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습니다.
자해를 시작했습니다. 숨이 막혀서, 너무 슬프고 아픈데 그 분노와 억울함을 풀 데가 없어서 내 몸에다 풀었습니다. 적어도 칼로 내 몸을 찌르는 순간에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니까요. 숨이 막히지 않았으니까요. 희한하게도 그렇게 저를 책망하고 질타하던 사람들이 제 몸에 난 상처들을 보고서는 눈물을 흘립니다. 제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였을까요? 적어도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이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은 힘들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처벌조차 받지 않는 범죄자들이 수두룩 합니다. 공소시효가 끝나서,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드는 폭행 및 협박이 없어서, '내가 당한 강간은 강간이 아니라서.'
피해자에게 가해의 책임을 묻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는 당신에게 강간당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간 게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기습적인 스킨십을 감당하기 위해서 당신을 만난 게 아닙니다.
내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행위를 난 동의한 게 아닙니다.
권력 행사를 멈추십시오.
당신이 ‘리드’라고 말하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항상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겪은 피해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나가던 예전과 달리, 저는 이제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저는 앞으로 저와 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책과 수치심, 분노의 늪에서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걷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연대하여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과 성차별을 근절하는 것, 생존자의 치료를 더디고 힘들게 하는 ‘폭행 및 협박 증명 요구’, ‘성폭력을 둘러싼 편견’을 전복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이자 사명입니다.
성폭력의 구성 요건을 폭행 및 협박이 아닌 적극적 동의로 개정하는 것.
이것이 제 꿈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 민지라고 합니다.
저는 7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촌 동생과 놀러간 PC방에서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지하철에서 낯선 걸인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22살에 아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강제 추행죄 및 강간죄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하는 경우’. 그런데 말입니다. 사촌 오빠는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PC방 사장도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걸인도, 강간범 또한 저에게 폭행 및 협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사촌 오빠는 어린 저에게 제 성기를 만지면 ‘놀아주겠다’며 회유했고, 제가 거절하자 억지로 제 속옷에 손을 넣어 제 성기를 만졌고, PC방 사장은 갑자기 저에게 와서 친절하게 굴며 제 어깨를 주무르다 기습적으로 손을 내려 가슴을 주물렀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남동생과 서있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낯선 사람이 와서 저와 부딪히더니, 제 가슴을 만지고 후다닥 내렸습니다. 나가기 싫었지만 계속 ‘나오라’는 종용에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된 술자리에서는, 끝까지 술을 거부하다 끝까지 거절하지 못해 입을 댔던 술에 필름이 끊겨, 일어나보니 알몸 상태로 모텔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얼어붙어 공황상태에 빠진 저를 가해자는 좋아한다며 강제로 껴안고 뽀뽀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저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협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에게는 그러한 행위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다는 그 ‘권력’ 말입니다. 그 권력 자체가 폭행이고, 협박입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에게 행사하는 그 행위 자체가 말입니다.
지금껏 저는 증명해야 했습니다. 제가 당한 피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내 몸과 정신은 물론, 내 자아를 무너뜨리고, 내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무너뜨렸다는 것을 증명해내야만 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일상에서도, 사법 처리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로 인해 상처 입어 망가진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피해자화’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당한 피해가 ‘피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왜 그랬니?”
“이제와서 이야기해서 어떡하라고.”
“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니.”
“다시는 그러지 마라.”
“왜 저항하지 못했니.”
심지어 “똥 닦아줘야 될 사람 참 많네.”라는 말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제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자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들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습니다. 그 행위를 한 건 가해자인데 피해자에게 가해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꾸짖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폭행 및 협박 아닙니까?
저 또한 저에게 한 명의 ‘가해자’였습니다. 제 잘못이라고, 가해자에게 아무런 말도 저항도 하지 못했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늦게까지 술을 먹은 제 잘못이라고,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간 당한 후 1년을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 저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거의 반년 동안 하루에 밥 한 공기밖에 먹지 못하다 식음을 전폐하고 휴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걷지를 못했으니까요. 힘이 없어 걸을 수조차 없어 학교를 못 갔습니다. 방에서 누워 지냈습니다. 체력이라도 기르려고 시도했던 산책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폭식을 해서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 가량 늘어났고, 폭식은 곧 폭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술을 먹고 자고, 저녁에 눈을 뜨면 술을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습니다.
자해를 시작했습니다. 숨이 막혀서, 너무 슬프고 아픈데 그 분노와 억울함을 풀 데가 없어서 내 몸에다 풀었습니다. 적어도 칼로 내 몸을 찌르는 순간에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니까요. 숨이 막히지 않았으니까요. 희한하게도 그렇게 저를 책망하고 질타하던 사람들이 제 몸에 난 상처들을 보고서는 눈물을 흘립니다. 제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였을까요? 적어도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이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은 힘들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처벌조차 받지 않는 범죄자들이 수두룩 합니다. 공소시효가 끝나서,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드는 폭행 및 협박이 없어서, '내가 당한 강간은 강간이 아니라서.'
피해자에게 가해의 책임을 묻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는 당신에게 강간당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간 게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기습적인 스킨십을 감당하기 위해서 당신을 만난 게 아닙니다.
내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행위를 난 동의한 게 아닙니다.
권력 행사를 멈추십시오.
당신이 ‘리드’라고 말하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항상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겪은 피해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나가던 예전과 달리, 저는 이제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저는 앞으로 저와 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책과 수치심, 분노의 늪에서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치유의 과정을 걷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연대하여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과 성차별을 근절하는 것, 생존자의 치료를 더디고 힘들게 하는 ‘폭행 및 협박 증명 요구’, ‘성폭력을 둘러싼 편견’을 전복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이자 사명입니다.
성폭력의 구성 요건을 폭행 및 협박이 아닌 적극적 동의로 개정하는 것.
이것이 제 꿈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다음 순서는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송판격파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아프다며 밀어냈어도 폭행·협박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적극적으로 반항한 흔적과 구조요청을 찾아볼 수 없다.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으로 볼 수 없다.
6개월간 피해가 지속됐지만, 적극 저항 증거가 없다.
상대방의 몸을 누르거나 팔을 잡는 행위는 폭행으로 볼 수 없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판례들 중,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문구들이 적힌 송판을 참가자들과 함께 격파하였습니다. 큰 기합소리와 함께 300장의 송판을 격파하는 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가 닿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분노를 담아, 우리가 부수어나가야 할 무수한 통념들을 더 많이 부수고 깨트려야겠습니다.
본집회를 마치기 전, 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정현씨의 <바꿔>라는 노래에 강간죄 개정의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도록 가사를 바꾸어 <강간죄 바꿔!> 노래를 다같이 불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앎 님이 진행해주었습니다.
<강간죄 바꿔!> 가사를 자세히 보고 싶으시면, 아래 더보기 클릭
<강간죄 바꿔!>
저항 안했냐고 묻지마
다들 심판하고만 있어
폭행 협박 증명 피해자만 짊어져야 해
국회 개정 미루고 있어
개정안 벌써 10개 나왔어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까 빨리 개정해
(다같이 함성) 와~
바꿔 바꿔 바꿔 동의 여부로 바꿔
바꿔 바꿔 강간죄 다 바꿔
바꿔 바꿔 국회를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간주 중 구호)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
왜 의심받아야만 하는지
폭행 협박 증명 피해자만 부담해야 해
검경 개혁 안하고 있어
가해자 처벌 요원해졌어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까 침묵 그만해
(다같이 함성) 와~
바꿔 바꿔 바꿔 동의 여부로 바꿔
바꿔 바꿔 강간죄 다 바꿔
바꿔 바꿔 검찰도 다 바꿔
바꿔 바꿔 경찰도 다 바꿔
바꿔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
바꿔 바꿔 통념도 다 바꿔
바꿔 바꿔 일상도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강간죄 바꿔!>
저항 안했냐고 묻지마
다들 심판하고만 있어
폭행 협박 증명 피해자만 짊어져야 해
국회 개정 미루고 있어
개정안 벌써 10개 나왔어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까 빨리 개정해
(다같이 함성) 와~
바꿔 바꿔 바꿔 동의 여부로 바꿔
바꿔 바꿔 강간죄 다 바꿔
바꿔 바꿔 국회를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간주 중 구호)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
왜 의심받아야만 하는지
폭행 협박 증명 피해자만 부담해야 해
검경 개혁 안하고 있어
가해자 처벌 요원해졌어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까 침묵 그만해
(다같이 함성) 와~
바꿔 바꿔 바꿔 동의 여부로 바꿔
바꿔 바꿔 강간죄 다 바꿔
바꿔 바꿔 검찰도 다 바꿔
바꿔 바꿔 경찰도 다 바꿔
바꿔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
바꿔 바꿔 통념도 다 바꿔
바꿔 바꿔 일상도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7시 20분부터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시작된 행진은 세종로와 종각을 거쳐 조계사 앞을 지나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며 이어졌고, 대오는 다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토요일 저녁의 도심을 찾은 시민들에게 우리가 왜 이 광장을 걷고 있는지, 왜 강간죄가 개정되어야 하는지, 국회와 사법부, 정부에게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연대를 요청하였습니다. 목이 터지게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꽉 채웠고,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10차 페미시국광장 구호>
이제는 강간죄다 / 강간죄를 개정하라
폭행협박 묻지말고 / 동의여부로 개정하라
강간은 강간이다 / 강간죄를 개정하라
피해자다움 강요마라 / 강간죄를 개정하라
동의 없는 성폭력 71.4% / 강간이다! 강간이다!
동의 없음 강간이다 / 가해자를 처벌하라
꽃뱀무고 의심말고 / 동의 없음 처벌하라
저항여부 묻지말고 / 동의여부 확인해라
국회는 형법 개정으로 미투에 응답하라
(강간죄를 개정하라 강간죄를 개정하라)
폭행 협박 없어도 강간은 강간이다
(강간죄를 개정하라 강간죄를 개정하라)
국제사회는 이미 동의 여부가 기준이다
(폭행협박 증명요구 이제는 폐기해라)
동의없는 성관계 강간으로 인정하라
(폭행협박 증명요구 이제는 폐기해라)
폭행협박 없어도 / 강간은 강간이다
피해자에게 묻지말고 / 가해자가 입증해라
피해자 먼저 의심하는 / 검찰경찰 각성하라
꽃뱀무고 협박마라 / 어디서 역고소냐
일상폭언 권력관계 / 위력이고 협박이다
피해자를 의심마라 / 가해자부터 의심하라
가해자부터 믿지 말고 / 피해자에게 공감해라
진짜미투 가짜미투 / 니가 뭔데 판단하냐
피해자다움 강요말라 / 가해자나 처벌하라
더 이상은 못참는다 / 강간문화 박살내자
죄지은놈 벌받아야 / 사법정의 실현된다
여성혐오 여성폭력 / 이제는 깨부수자
무너진 사법정의 / 우리가 다시 쓴다
끝까지 싸운다 끝내는 바꾼다 성평등이 정의다 (함성)
집회를 마무리하며, 현장에서 신청하신 발언을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인 푸른나비님은 친족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국민청원을 시작하면서 연대해 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생존자의 목소리로 강간죄 개정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전해주셨습니다. "생존자란 성폭력 피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당당히 맞서 적극적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이름입니다. 이전에 겪은 고통보다도 더 큰 존재입니다 !! 여기 살아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습니다! "라고 힘있게 말해주었습니다. 행진을 마친 후라 참가자들 모두 힘든 시간이었지만, 온 마음과 온몸으로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나누어주신 푸른나비 님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연대의 마음과 지지의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푸른나비 님의 발언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 더보기 클릭>
저는 이번에 친족 생존자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청원을 한 푸른나비입니다.
청원동의에 대한 감사의 말씀과 강간에 대한 인식 고발을 위해 여기에 섰습니다. 먼저 강서여성전화 회원분들 청원에 필요한 100명의 동의를 위해 단체 톡방에서 연대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생존자 자조모임인 <작은말하기>와 청원을 위해 많이 애써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안양여성의전화는 제가 안양역에서 직접 청원의 동의를 얻도록 판넬을 구성한 것과 적극 도와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으로 마음을 전달합니다.
저는 8살 어릴 때부터 그 후 10년 동안 아빠가해자는 성폭력을, 엄마가해자는 성폭력 방조자로서 저를 폭력으로 학대했습니다. 아빠가해자에 대한 일을 여동생에게 말했을 때, "다음 차례가 너가 될까봐 견뎠다" 했더니 "그건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라 했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사형선고와 같았습니다. 딸이 있는 엄마로서 죽을까 싶어 평생 비밀이었던 제 일을 드러냈고 가해자들에게 화를 내도 된다는 조언으로 저는 현재 살아있습니다.
여동생의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자신을 돌봐준 착한 언니라며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던 피붙이인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동생은 정말 나쁜 사람였을까?'
돌아보니 이사회는 강간에 대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항하지 않았으니 동의한 것이다."
"짧은 치마 때문이다."
"네가 조심했어야 한다" 라고.
성범죄는 가해자 100프로 잘못인 범죄임에도 피해자에게 범죄의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아동에게도 굉장히 가혹합니다. 보습원장이 10살 아동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폭행을 했는데 반항하지 않았고 폭행협박이 없다는 이유로 8년형에서 3년으로 감형하였고, 조카를 성폭행했는데 반항여부를 따져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잣대가 성인이라면 어떨 것이지 뻔히 예상되는 판결들입니다.제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법은 가해자 위주이고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법입니다.
저 또한 협박도 없었고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밝혀봤자 소용없는 죄인가요?
과거의 저는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나 혼자라면 침묵하려 했습니다. 생존자 모임에 와보니 참가 인원 중 거의 8~90프로가 친족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2차 가해를 했지만 내가 너무 사랑했던 여동생은 죽었습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도 저는 결코 용서 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가정 안의 범죄를 묵인하는 가부장제의 이 나라도 끝까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청원으로 어릴 땐 없었던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저의 청원에 동의한 4512명이 제겐 어른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묻겠습니다 .
저의 일이 아직도 개인적인 불행입니까?
설령 불행이라 하더라도 사형선고와 같이 들었던 2차 가해의 말은 무엇 때문인가요?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해자 부모와 같이 이 나라가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울면서 싸운다!”
말할 수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이 암수범죄를 이렇게 울면서 말합니다. 저는 매일 죽고 싶어 하는 친족생존자에게 "꼭 자연사 하자" 다짐하며 모든 친족 생존자들이 촛불 들고 광장에 나오자 했습니다. 제가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을 꾸는 걸까요?
앞으로 우리의 일을 말하기 위해 가슴 속에 촛불 들고 함께 약속 했던 두 사람, 민지와 푸른나비. 여기 있습니다. 생존자란 성폭력 피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당당히 맞서 적극적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이름입니다.
이전에 겪은 고통보다도 더 큰 존재입니다 !!
여기 살아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습니다!
이 사회와 이 나라에 대해 외칩니다.
더 이상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이유를 찾지 않도록 폭행 협박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지금의 강간 법을 개정하기를 촉구합니다.
생존자 푸른나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에 친족 생존자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청원을 한 푸른나비입니다.
청원동의에 대한 감사의 말씀과 강간에 대한 인식 고발을 위해 여기에 섰습니다. 먼저 강서여성전화 회원분들 청원에 필요한 100명의 동의를 위해 단체 톡방에서 연대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생존자 자조모임인 <작은말하기>와 청원을 위해 많이 애써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안양여성의전화는 제가 안양역에서 직접 청원의 동의를 얻도록 판넬을 구성한 것과 적극 도와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으로 마음을 전달합니다.
저는 8살 어릴 때부터 그 후 10년 동안 아빠가해자는 성폭력을, 엄마가해자는 성폭력 방조자로서 저를 폭력으로 학대했습니다. 아빠가해자에 대한 일을 여동생에게 말했을 때, "다음 차례가 너가 될까봐 견뎠다" 했더니 "그건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라 했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사형선고와 같았습니다. 딸이 있는 엄마로서 죽을까 싶어 평생 비밀이었던 제 일을 드러냈고 가해자들에게 화를 내도 된다는 조언으로 저는 현재 살아있습니다.
여동생의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자신을 돌봐준 착한 언니라며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던 피붙이인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동생은 정말 나쁜 사람였을까?'
돌아보니 이사회는 강간에 대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항하지 않았으니 동의한 것이다."
"짧은 치마 때문이다."
"네가 조심했어야 한다" 라고.
성범죄는 가해자 100프로 잘못인 범죄임에도 피해자에게 범죄의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아동에게도 굉장히 가혹합니다. 보습원장이 10살 아동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폭행을 했는데 반항하지 않았고 폭행협박이 없다는 이유로 8년형에서 3년으로 감형하였고, 조카를 성폭행했는데 반항여부를 따져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잣대가 성인이라면 어떨 것이지 뻔히 예상되는 판결들입니다.제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법은 가해자 위주이고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법입니다.
저 또한 협박도 없었고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밝혀봤자 소용없는 죄인가요?
과거의 저는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나 혼자라면 침묵하려 했습니다. 생존자 모임에 와보니 참가 인원 중 거의 8~90프로가 친족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2차 가해를 했지만 내가 너무 사랑했던 여동생은 죽었습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도 저는 결코 용서 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가정 안의 범죄를 묵인하는 가부장제의 이 나라도 끝까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청원으로 어릴 땐 없었던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저의 청원에 동의한 4512명이 제겐 어른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묻겠습니다 .
저의 일이 아직도 개인적인 불행입니까?
설령 불행이라 하더라도 사형선고와 같이 들었던 2차 가해의 말은 무엇 때문인가요?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해자 부모와 같이 이 나라가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울면서 싸운다!”
말할 수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이 암수범죄를 이렇게 울면서 말합니다. 저는 매일 죽고 싶어 하는 친족생존자에게 "꼭 자연사 하자" 다짐하며 모든 친족 생존자들이 촛불 들고 광장에 나오자 했습니다. 제가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을 꾸는 걸까요?
앞으로 우리의 일을 말하기 위해 가슴 속에 촛불 들고 함께 약속 했던 두 사람, 민지와 푸른나비. 여기 있습니다. 생존자란 성폭력 피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당당히 맞서 적극적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이름입니다.
이전에 겪은 고통보다도 더 큰 존재입니다 !!
여기 살아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습니다!
이 사회와 이 나라에 대해 외칩니다.
더 이상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이유를 찾지 않도록 폭행 협박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지금의 강간 법을 개정하기를 촉구합니다.
생존자 푸른나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선아 님은 함께 모인 이 현장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말하며,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떠올렸다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알기에, 우리 손으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말했습니다. 더이상 어떤 죽음도, 폭력도,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드실 거라는 말에 모두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정치를 통해 더 나은 여성의 삶이 실현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유발언자 님은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선배의 강간을 공론화한 경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가해자는 결국 선거에서 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절 지지한다 했지만 그로부터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가해자가 절 고소했고 저도 결국 늦게 고소했습니다."라고 말하며, "피해자가 증명의 무게를 다 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제 이야기를 합니다. 강간죄 개정의 그날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연대의 다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지구 님은 가해자 앞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탄원서를 직접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오직 할 수 있는 건 네가 조심했어야지 가지 말았어야지 하며 제 자신을 탓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싫다고 했습니다. 저를 만지는 선생님의 손을 치우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금방 무시당했고 저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이 상처와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저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저는 살아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생존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참가자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그 자리에 함께 한 모두가 앞으로 지치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 다짐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 모인 참가자들이 성폭력피해생존자와의 연대를 통해 강간죄의 개정을 외치는 10차 페미시국광장에서 이어진 생존자들의 생생한 말하기는 이 투쟁에 더 큰 연대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피해 이후의 삶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무대에서 힘주어 읽어내려간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가슴 속에 쟁쟁한 메시지가 되어 앞으로 이어질 싸움의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모든 발언을 마친 후 마지막 무대는 디제잉 크루 <바주카포>의 DJ 키세와 님이 채워주셨습니다. 다시 싸움을 시작하면서, 지지않는 마음으로 더 신나게 싸워나갈 것을 다짐하듯이 심장을 울리는 비트와 흥겨운 리듬으로 참가자들을 들썩이게 해주었습니다.
10차 페미시국광장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거리에서, 광장에서, 일상에서 함께 싸워나갑시다!
강간죄를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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